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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입바른 소리를 해가면서 한국교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하지만 정작 그들도 책 장사나 하고 강의 장사나 하면서 인기에 영합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주장을 가만히 살펴보면 교회론에 대한 무지가 드러난다. 교회에 대한 알러지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장이 이해가 가고 또 반박하고 싶지도 않다. 그들이 한국교회의 행태에 대해 쏟아 놓는 독설들은 대부분 다 맞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나도 오늘은 잠깐 그들을 거들어 볼까한다.

 

사실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부목사 시절에는 결코 할 수 없었던 이야기이다. 지금이야 작지만 한 교회를 담임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담임목사의 설교독점권에 관한 이야기이다. 한국교회의 타락이나 침체에 있어서 그 이유를 여러 가지 들 수 있겠지만 대표적인 것을 하나 들자면 담임목사의 설교 독점권을 들 수 있겠다.

 

지금 대한민국의 교회는 대부분의 설교를 담임목사가 한다. 가끔 담임목사가 휴가를 갈 때에나 외부 일정이 있을 때에야 부목사나 다른 교역자들에게 설교할 기회가 찾아온다.

 

어떤 목사가 자기는 부교역자들에게 설교할 기회를 많이 주는 목사라고 말한다. 가끔 수요예배나 금요철야예배 혹은 주일 오후에 부교역자들에게 설교기회를 준다.

 

그러나 실상은 부교역자들에게 설교할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담임목사가 모든 예배 때마다 설교를 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에 조금씩 나눠주는 것뿐이다.

 

그래서 운(?)좋은 목사는 청년부에서 설교도 하고 중고등부에서 설교를 하기도 한다. 이런 사역이 귀중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마땅히 귀중한 사역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목사들은 교회전체 앞에서 설교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부교역자들에게 설교기회를 주는 담임목사를 만난다하더라도 주일오전 예배에서는 결코 설교를 할 수 없다.

 

내가 아는 어떤 성도가 섬겼던 교회는 담임목사가 피곤하고 힘든 주일에는 주일1부 예배만 인도하고 나머지 2, 3, 4부는 1부를 녹화해서 방송으로 예배를 하게 한다고 한다.

 

일부 생각이 있는 성도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침묵하고 또 당연히 여기는 자들도 많다. 왜냐하면 그가 담임목사이기 때문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수요일에는 부교역자들에게 설교를 맡겼었는데 주일 오전에는 맡기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에 잠시 몸담았던 교회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하루는 담임목사가 외부 일정이 있어서 수요설교를 부목사에게 맡겼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에 그 일정이 취소가 되었다. 수요예배가 거의 다 시작할 때 즈음에 담임목사가 교회에 도착했다. 그런데 담임목사가 강단에 서는 것이다.

 

설교를 준비했던 부목사는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현실적으로 담임목사가 그에게 있어서는 갑이기 때문이었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이다. 개혁주의라면 도저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들을 개혁주의라는 교회에서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 안에 강도권을 가진 목사나 강도사가 여럿 있어도 왜 담임목사만 설교해야 하는 것일까?

 

자기가 담임목사라서 그런 것일까?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담임이라는 타이틀 때문이다. 그러나 이 타이틀은 마귀가 깔아놓은 교묘한 함정이다.

 

자기가 담임이라는 것 때문에 교회가 자기 것인 줄로 착각하는 것이다. 교회가 자기의 것이기 때문에 교회에 모인 자들에게는 자기의 사상과 신학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래야지만 교인들이 자기를 따르고 자기를 추앙하기 때문이다.

 

설교를 잘하는 목사는 더더욱 강단을 양보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기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설교에 사람들이 계속 빠져들어야 한다. 그래서 놓을 수가 없다.

 

물론 설교를 잘하든 못하든 그것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그냥 그 자리에 있으면 사람들이 존중해주고 높여준다. 잠시 올라와 우스운 이야기 몇 개만하고 내려가도 성도들은 담임목사의 이야기라 거기에 뭔가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있는 줄 안다.

 

더군다나 교회가 성장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시작하면 모두 담임목사가 잘나서 그런 줄 안다.

 

여기서부터 교회의 타락은 시작된다. 한 사람의 설교나 주장을 계속 듣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뇌된다. 그것도 영적으로 보이는 강단에서 그렇게 한다면 효과가 훨씬 크다.

 

또 그렇게 목회하는 목사를 따라주는 성도들을 보면서 목사는 자기가 잘하고 있는 줄로 안다. 악순환이다.

 

어쩌면 이런 것은 성도들에게도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책임을 돌릴 수만은 없다. 미안한 말이지만 대부분의 성도들은 너무 순진한(?) 양들이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목사는 설교를 해야 목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요즘 교회는 설교권이 없는 목사가 교회 안에 너무 많다. 그냥 직원일 뿐이다.

 

교회는 설교도 맡기지 않을 것이면서 목사를 왜 뽑았을까? 성도들을 잘 관리하도록 하기 위해서? 그런 것이라면 목사가 아니어도 할 사람이 많다.

 

목사는 담임이나 라는 타이틀에 얽매이지 않고 설교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가 그것을 보장해 주어야 하고, 성도들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문제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함께 동역하는 목사들의 신학의 일치가 전제되어야 할 필요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하더라도 목사가 복음의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에게 설교기회를 주어야 한다.

 

이렇게 교회 안에 설교자가 다양해지면 설교의 질도 높아지고 성도들도 더 깊고 다양한 설교를 들을 수 있는 혜택이 생기게 된다.

 

누구든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하고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타락이 시작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동역자일뿐이다(고전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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