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2.10 17:37

설교의 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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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권위는 성경을 토대로 할 때에만 세워진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을 통하지 않고는 구원의 진리라든지 하나님의 나라라든지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것과 같은 기독교의 정수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길이 없다.

 

목사라는 존재는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라는 도구를 사용하여 청중들에게 전달하는 자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의 사역에서 설교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없다.

  

그런데 요즘 한국교회에서는 홍수에 마실 물이 없는 것처럼 넘쳐나는 설교의 홍수 속에도 참된 설교를 찾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다.

  

왜냐하면 많은 목사들이 본문을 무시하는 설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 한 구절을 읽어 놓고 그 구절에 등장하는 어떤 표현을 가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본문과 상관없는 설교들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본문을 강해한다는 강해설교를 하면서도 본문과 상관없는 설교를 한다. 때로는 앞뒤 문맥과 상관없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설교를 한다든지 성경의 배경과 역사와는 전혀 상반된 엉뚱한 설교를 하곤 한다.

   

아마도 이러한 경우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정해 놓고 본문을 해석해 나가는 지극히 자의적인 해석이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겸손한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선 자신의 무능력함을 먼저 인지해야 한다. 달변이나 여타 세상지식의 많고 적음은 오히려 설교자로 하여금 말씀 외에 다른 것들을 의지하게 하는 방해물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겸손한 설교자는 결국 본문으로 돌아 갈 수밖에 없다. 본문을 충실하게 연구하고 문맥과 배경을 숙지하고 성경이 사용하고 있는 문법과 말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통하여 성경이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말씀의 의도를 파악하는데 힘써야 한다.

  

그렇게 되면 설교자는 어느새 본문 안의 상황 속에 서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본문과 상관없는 설교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적어도 이러한 상황을 알고도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해댈 수 있을까?

  

목사는 대언자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중을 전달하는 전달자다. 물론 이 사실을 올바로 전달하기 위해 설득도 해야 할 경우가 있고 해설이나 설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선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전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대언자라는 사실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설교의 방법이나 기술에 있어서는 다양함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설교자는 본문이 하고자 하는 말씀을 떠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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